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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백병원 70주년 심포지엄

약손suh 2016. 12. 21. 11:11

"국내 첫 민립공익법인 백병원, 유구한 역사 이어나가자"

인제대 백병원 70주년 심포지엄

  • 설립 백인제 선생 3·1운동 가담
- 의료공헌 넘어 민족주의 삶 조명

인제대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립공익법인 백병원이 설립된 지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9일 의과대학 1층 강당에서 '백인제(白麟濟·1899~?)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경성의학전문학교(경성의전) 외과 주임교수였던 백인제 박사는 서울 중구 저동 현재 인제대 서울백병원 자리에 있던 우에무라 외과병원을 1941년 인수해 위탁경영을 시작했고 1941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백외과의원을 개설해 본격적으로 경영했다. 그는 광복 후인 1946년 12월 17일 사재를 털어 우리나라 최초의 민립공익법인 '재단법인 백병원'을 설립해 의료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6·25전쟁 도중 1950년 납북돼 현재 생사를 알 수 없다.
   
지난 9일 인제대 의대에서 열린 백인제 기념 심포지엄.
■민족주의자로 의료발전 선도

서울대 의대 인문의학교실 황상익 교수는 '백인제의 삶과 그 의미'라는 주제발표에서 "선생은 경성의전에 다니던 1919년 3·1운동에 적극 참여했다가 체포돼 퇴학과 함께 옥고(징역 6월, 집행유예 3년)를 치렀다. 복학해 1921년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3·1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의사면허증을 받지 못하고 2년간 총독부의원에 근무한 뒤에야 받을 수 있었다"며 선생의 민족주의자적 삶을 재조명했다. 황 교수는 "선생은 1930년 조선의사협회 창립을 주도했고, 해방 이후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을 흠모해 흥사단에 가입, 활동하며 무실역행(務實力行) 정신을 실천했다"고 강조했다.

오상훈 부산백병원장은 "'장군의 아들'이나 '야인시대' 같은 영화나 TV드라마를 보면 김두한, 시라소니 같은 조폭들이 패싸움을 벌이다가 다치면 백외과의원을 찾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 백외과의원의 위상과 의료 수준은 어떤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에 황 교수는 "백인제 박사는 1937년 경성의전 교수 시절 유착성 장폐색증 환자에게 감압술을 세계 최초로 시술해 치료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일본인들도 백외과의원을 많이 찾았다"고 대답했다.

고려대 코어사업단 공혜정 연구교수는 '일제 강점기 백외과의원의 도시공간적 의미'에서 "백외과의원의 규모는 처음 30병상이었다가 환자가 늘어나면서 50병상으로 확장됐다"고 말했다.

■한국판 메이요 클리닉 지향

   
1941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 앨범에 수록된 백인제(왼쪽) 교수가 임상강의를 하는 모습.
인제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김택중 교수는 '교육자 백인제'를 통해 "선생은 경성의전 주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이재복 장기려 김희규 등 한국인 제자를 각별한 사랑으로 지도해 걸출한 외과의사로 키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선생은 1936년 11월부터 1937년 1월까지 미국 메이요 클리닉을 시찰하면서 느낀 바는 백병원을 민립공인법인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며 "1930년대 진료, 연구, 교육이 통합된 세계 최고 수준 비영리의료기관 형태의 사립병원 미국 메이요 클리닉을 벤치마킹해 한국의 메이요 클리닉을 만들고자 꿈꿨다"고 밝혔다.

인제대 의대 이종태 학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번 심포지엄을 계기로 백인제 박사와 백병원의 인술제세(人術濟世) 이념 및 역사성이 새롭게 인식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