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암 선고를 하는 의사의 마음은... (퍼옴)

약손suh 2008. 4. 30. 16:35
환자에게 암 선고를 하는 의사의 마음은...
등록일 : 2008-04-30 11:29:49
 


오늘자 중앙일보 j-style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얘기를 웃으며 하는 법> 취재에 응해주신 서울대 의대 외과학 박재갑 교수이십니다. 국립 암센터 1,2대 원장을 지내시고 ‘담배 없는 세상 연맹’(ToFWA)을 창설하셨죠.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 는 소명의식이 너무 아름다우신 전문가시죠. 번거로운 취재 요청에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정리되지 않은 인터뷰 내용들입니다. 독자들께서 교수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더 가깝게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 공개합니다.

1. 보통 의사들의 암 환자나 가족들에게 암 사실을 어떻게 알리나? 특별한 매뉴얼이 있나?


아주 어린 갓난쟁이나 90넘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가급적 정확하게 얘기하죠. 저같은 경우에는 되도록 희망적으로 얘기합니다. 거짓말은 절대 안하고요. 단, 제일 좋은 경우와 제일 나쁜 경우의 범위 안에서 대체로 좋은 쪽을 이야기하려 노력합니다.


외래진료를 보러가면 하루에 70-80명의 환자를 만나죠. 그 중 대부분은 나를 처음 만나는 환자고. 그럴 경우엔 첫날 얘기를 해야하는데...그날 그때 얘기 안하면 어떡하나. 그 사람이 누굴 믿고 이 병원에 왔겠어. 그래도 그나마 내가 얘기해 주는 게 유명한 사람이 말해 주는 게 위안이 되지. 사실 병원에 나를 만나러 오는 환자들, 여기에 오기까지 오만 가지 생각을 다했을 거라고. 내가 누구라는 걸 다 아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어.

2. 알리는 것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있나? 예를 들어 가족들이 환자 당사자에게 알리지 말 것을 요구할 경우 어떻게 하나?


거짓말을 절대 하지 않아요. 신뢰도의 문제지. 다만 소극적인 얘기를 할 때는 있지. 어떻게하냐면...아, 거기가 막혀서 수술을 해야되거든요...이렇게. 암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으면서 수술 얘기를 하는거지. 그러면 거기서 왜 막혔냐고 묻는 사람은 없어. 가족들이 말하지 말라고 할 경우에도 안하는 편이고. 가족들의 권리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소극적 얘기들을 잘 생각해보면 암이라는 판단이 들거야. 그렇다고해서 무조건 가족들을 존중하는 건 아니지. 그럴 땐 설득의 과정이 중요해. 대화를 해서 수긍시키지. 암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고 말이야.

3. 암 사실을 통보했을 때 환자들의 반응은 대개 어떤가? 그리고 그것과 환자의 생존율간에는 상관관계가 있나?


대부분 먼저 의심하고 오기 때문에 수긍하는 편이지. 내가 사실을 숨겨버리면 누굴믿고 병원에 오겠나. 교회에서 목사님이 거짓말한다고 하면 교회를 어떻게 가나.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지. 그건 의사의 도리가 아니야.


환자의 생존율을 위해서라도 암을 얘기하면서 희망적인 얘기를 많이해. 처음부터 포기하지 않게. 과장하지 않는 범위에서 좋은 방향으로. 왜냐면 50% 생존율이라해도 본인이 살면 100%아닌가. 같은말이라도 이렇게 하는거지. 겁을 주는 의사들도 있어. 그럼 나한테 와서 하소연을 한다고. 그 의사가 그러는데 나는 살 가망이 없대요...라면서. 그런데 그러면 절대 안돼. 아주 기적같은 일이 생겨 사는 경우도 있는 거고. 통계만 믿고 환자한테 얘기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지. 통계 범위 내에서 가급적 좋은 얘기만 하고. 어차피 힘든 치료, 희망을 가지고 힘든 것과 포기하면서 힘든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의사도 오만하거나 건방지면 안돼. 통계를 무시할 순 없지만 의사 개개인이 모든 걸 통계로 맞출 순 없는 거지.


4. 교수님이 경험했던 가장 극적인 암 사실 통보는 어떤 것이 있었나? 어떤 경우가 가장 알리기 힘들었나? 이유와 그 후 알린 방법?


내가 81년에 강사가 돼서 82년에 당시 환갑 넘으신 우리 큰어머니 수술을 맡았지. 청주에서 수술하신 다는 걸 큰아버지가 조카가 의사인데 왜 거기서 하냐고 모시고 왔지. 위암이 너무 심해서 6개월밖에 못사신다고 사촌형한테 담담하게 말했어. 당시에 내가 34살, 통계적으로 나름 프로페셔널하게 판단하고 통보했던거지. 근데 큰어머니 90넘게 사셨어.


제일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우리 큰형. 나보다 8년 위의 큰형은 나보다 공부를 10배 잘했던 천재 의사였지. 그런데 어느날 다이어트도 안하는데 살이 많이 빠져있더라고. 변에서 피가 보인다고 하고. 알고보니 암이 간까지 다 퍼져서 미국에서 수술하자마자 1년도 못살고 돌아가셨어. 내가 만날 보는 게 암이고 형도 의산데...참 그때는 안쓰럽고 어떻게 말해야 할 줄을 몰라서 “어쩔 수 없잖냐”라고밖에 말을 못했지. 내가 국립암센터 원장인데 형한테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때 형 간 사진 찍은거 아직도 가지고 있어. 그 때 굉장히 힘들었지. 어떻게보면 그게 의사의 한계인지도 몰라. 손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속수무책인거지. 형한테도 그렇고 환자들한테 이런 마음을 표현할 수는 없잖아. 함암제가 안들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한계에 부딪치지. 수술도 못하고 그렇다고 포기하라는 말도 못하고. 지금은 불필요한 치료를 하는 게 환자를 더 괴롭게 한다고 말해야 하는데...그럴 경우 환자한테는 묻는 말만 대답하지. 내가 먼저 말해주는 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니까.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

'진료실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BSE  (0) 2008.06.11
BSE  (0) 2008.06.11
[스크랩] 2) 알아두면 도움되는 ADHD 싸이트  (0) 2008.04.18
수술 후 기계적 장폐색에 대해서  (0) 2007.12.16
스트레스 풀며 살아요!  (0) 2007.11.30